영화 [테넷]의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다. 그러나 [테넷]에 적용된 물리학들을 설명한다는 것은 일견 무의미해 보인다. 시간의 역전 속에서 의식의 순항은 유지될 수 있을까? 혹은 미관측된 확률 상태를 결정된 물질 속에 가둘 수 있는 걸까? 시간 여행을 위한 웜홀을 만들지라도 웜홀의 내부를 가득 채우는 음의 에너지는 태양이 10억 년 동안 만들어 내는 에너지와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 물론 괴델은 소용돌이치는 우주 그 자체를 이용해서 우리가 적절한 궤적을 따른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적절하게도 영화를 본다는 것은 나의 현재 속에서 확정된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인 동시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미래를 떠올리는 것이다. 영화야말로 타임머신이며,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되짚는 물리적 실체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제5도살장>에서 트랄파마도어인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등장 시켜 시간에 대해 말하게 한다. 트랄파마도어인은 그들의 존재가 언제 생겨났으며, 그들의 존재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멸망할지 아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의식 속에서 시간은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서 미래의 어느 한 지점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동시에 중첩되어 존재한다. 미래를 안다면 그걸 다른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인공의 말에 트랄파마도어인은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테넷]에서도 여러 번에 걸쳐 언급되는 말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이 말을 듣는 순간 세계는 이미 결정되었다는 결정론적 패배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작품을 보자. 테드 창은 그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언어학자 주인공이 떠올리는 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은 미래에 태어날 그녀의 사랑스러운 딸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딸의 죽음을 같이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외계 생명체인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운 다음 우리가 아는 시간의 인식과는 달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식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고대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한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결코 되돌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테넷]은 3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은 ‘3차 세계대전’이란 말을 듣자 곧바로 ‘핵전쟁’을 떠올린다. 인간 문명을 대규모 붕괴로 이끌 수 있는 재난을 떠올릴 때 핵전쟁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주인공은 담당자에게 3차 세계대전은 그것보다 더 끔찍할 것이란 말을 들을 뿐이다. 스포일러를 피해서 말하자면, 3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우리가 이미 당면한 문제로부터 비롯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 역시 우리가 떠올리는 보통의 상상력 내에 존재한다. 그보다 이러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쟁에 이용하는 기술이 우리의 상상력을 더 자극한다. 그 기술은 ‘인버전(Inversion)’이다.

인버전(Inversion)은 역전 또는 역행이다. 이를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특수한 장치를 통과한 후 시간이 역전된 세계로 들어서는 것처럼 묘사한다. 이 공간 속에서 ‘너’라는 존재는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가서 자리에 앉아 스크린에 투사되는 빛을 바라보지만, ‘나’라는 존재는 안구에 닿은 빛 입자가 스크린을 거쳐 영사기로 되돌아가며,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뒷걸음으로 걸어 나가는 장면으로 묘사한다. 물론 시간의 역전이 인간의 외피에만 작용한다는 이런 설정은 그야말로 ‘영화적’이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시치미를 뚝 땐 채 이 현상을 밀고 나간다. 이러한 방식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지만, 영화의 몇 장면은 역전된 세계를 꽤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초반 주인공에게 인버전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에게 인버전을 알려주는 과학자는 설명 대신 하나의 현상을 보여준다. 그 현상이란 총을 쐈을 때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것이 아니라 표적에 박힌 총알이 총의 약실로 되돌아오는 현상이다. 그야말로 인버전이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엔트로피(entropy)에 관한 언급이 몇 번 등장할 뿐이다. 엔트로피는 특수하거나 특별한 상황이 점차 사라져 가는 현상을 일컫는 물리학 용어이다. 특별한 상황이란 무엇일까? 트럼프 한 벌이 그림과 번호 순서대로 정리돼 있는 것 혹은 내가 10년간 타이핑한 원고가 첫 페이지에서 끝 페이지까지 순서대로 쌓여 있는 것, 혹은 유기물의 조합이 우리와 같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것 등이다. 이것들은 그야말로 특별한 상태에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살고 인식하는 세계, 즉 물리계에서 모든 물질은 저 엔트로피에서 고 엔트로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 엔트로피에서 저 엔트로피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떨어진 계란이 깨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떨어진 계란이 다시 깨지지 않은 계란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떨어진 계란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수많은 원자와 분자의 속도를 알고 이를 동시에 바꿀 수 있다면 계란이 깨지는 운동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 물론 [테넷]이 사용하는 인버전은 이보다는 조금 다른 것으로 보인다. 원자와 분자의 속도를 동시에 바꾸는 것은 고전 물리학의 세계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모든 물체의 운동이 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가정해도 물리법칙에 전혀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테넷]이 그려 보이는 것은 거시 세계의 운동을 빙자한 미시 세계의 확률이다.

[테넷]이 양자역학의 아이디어를 이용했다고 해서 양자역학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테넷]이 사용한 아이디어들은 우리의 직관에 위배되는 내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테넷]에서 인버전 상태를 묘사할 때는 대부분 사물의 운동이 역전된 상태를 그려 보인다. 이는 마치 영화를 역재생한 상태와 같다. 하지만, 영화 초반 인버전 상태를 보여줄 때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총알이 주인공의 의식에 따라 자신의 손으로 옮겨지는 장면은 역재생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는 마치 총에 어떤 힘이 가해져서 손바닥으로 튀어 오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총알에 담긴 상태를 의식하는 것이라는 말로 대충 넘어가는 이 현상이 [테넷]이 고전 물리학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리학에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일반 법칙은 엔트로피뿐이다. ‘물질은 고 엔트로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은 물질이 특정 상태에 처하는 방법의 수가 많다는 뜻이다. 10년 동안 쓴 원고가 페이지 순서대로 쌓이는 방법은 하나지만 그것이 밖에서 불어온 강풍에 날렸을 때 아무렇게나 쌓일 확률은 엄청나게 높다. 여기서 원고가 페이지 순서대로 정리된 상태는 질서 있는 상태로 특별한 상태이다. 그런데 엔트로피의 통계역학적 개념을 정립한 루트비히 볼츠만은 이러한 특수성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대략적이고 희미하게 바라볼 때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엔트로피는 이 대략적인 양을 통계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다.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세상을 안개 속의 풍경(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처럼 바라보지 않고 미시적인 상태를 관찰하면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사라진다고 말한다. 우리는 원인 다음에 결과라는 직관을 가지고 있지만, 물질의 기본 법칙에는 원인과 결과의 구분이 없다. 즉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과거와 미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는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절대적인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은 25살에 깨달았다. 그리고 물리학자들은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들이 만들어 내는 사건들의 관계라고 말한다.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흔히 말하는 관측이 결과를 결정한다는 말은 사건들이 시공간의 연속성 속에 걸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사건이 시공간 안에서 동시에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유일한 과거란 없다.

[테넷]에서 인버전은 하나의 물질에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 즉 가능한 사건을 담아내는 기술이다. 이를 관찰자가 의식했을 때 확률이라는 수많은 과거 가운데 하나가 사건으로 결정되고, 하나의 사건으로 결정된 총알은 주인공의 손바닥 위로 튀어 오르게 된다. 그러나 단순하게 설명한 이 내용이 영화 [테넷]을 이해하는 데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영화는 학문을 담아낼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삶을 담아내는 데 더 능숙한 기술이다. 영화의 제목 “테넷”은 사전적 뜻 외에 ‘사토르 마방진(Sator Square)’에서 따온 제목으로 보인다. 이 마방진은 가로로 읽을 때나 세로로 읽을 때나 동일한 단어를 보여줌으로써 삶의 순환을 주술화한 것이다. 기원전 8세기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노래를 들어보자. “아틀라스의 딸들인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뜨면 수확하기 시작하고, 지면 쟁기질하고 씨 뿌리기 시작하시라. 이 성단은 마흔 밤과 마흔 낮을 숨어 있소. 그러다가 해가 바뀌어 낫을 갈 때가 되어서야 그들은 다시 처음으로 나타나지요. 이것이 농사의 법칙이오.”

양자역학의 미시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었건 우리는 의식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며 살아왔다. 해는 서산으로 지고, 달은 해의 꼬리를 물고 달린다. 녹음이 짙어지면 이내 서리가 내리고 낙엽이 진다. 그런 다음 세계는 흰 눈으로 뒤덮이고 이내 녹아내린 개울가에는 푸른 싹이 솟아오른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 도리없이 순환적 세계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리고는 시간의 흐름을 자연의 거역할 수 없는 순리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계절이 순환하듯 인간은 아이를 낳고 아이는 커서 또 부모와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는다.

그러므로 [테넷]에 봐야 할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우주의 구조’가 아니라 아들을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이다. 3차 세계대전을 막는다는 것은 곧 우리의 아이들을 지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건, 고전 물리학의 주장처럼 물질의 움직임이 우주 역사 전체에 걸쳐 결정되어 있건 우리는 여전히 시간을 의식하고 사유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의 아이들이다. 영화의 마지막, 악당이 자기변명처럼 제시하는 이유는 악당의 이기적인 이유를 떠나서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 이유 역시 다름 아닌 다음 세대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 외부 원고 일부 수정

9 댓글

  1. 역시 닥두님!
    테넷에서는 엔트로피 역전은 시간역전에, 양자역학은 결정론적 세계관 설명에 쓰이고 있는데 두 부분을 잘 짚어 주신 것 같습니다.
    혹시나 이 부분이 더 궁금하신 분들은 CGV 유튜브 채널의 이동진/김상욱 GV를 참조 하셔도 좋을 듯 하고.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 있네”에 김상욱 교수님의 엔트로피/양자역학 편을 참조하셔도 좋겠습니다. 내용이 한 번 들어서는 잘 이해가 안되지만 여러번 들으면 “마치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ㅋㅋ 특히나 양자역학편 맨 마지막 부분은, 결정론적 세계관/자유 의지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의 현재까지의 결론이 어떤 면에서는 서늘합니다. 추천!

        • 리처드 파인만도, 김상욱 교수님도 말씀 하셨지만, 인간의 뇌는 양자역학을 이해하도록 진화된게 아니라서 이해가 안 가는 게 전혀 이상할 것도 없고, 그냥 미시세계가 거시세계와는 다르게 생겨먹었다는 것만 이해해도 문제 없다고 봅니다.^^ 아인슈타인은 자꾸 거기서 신을 들먹였지만, 미시세계의 본질이 굳이 인간에게 이해 받도록 생겨먹을 필요는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