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휴 그랜트)’은 한량이다. 먹고사는 일은 아버지의 유일한 히트곡에서 나오는 저작권료로 해결되니 별다른 걱정은 없다. 그는 아무런 직업 없이 놀고먹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관심을 오로지 여성을 “꼬시는” 데 둘 뿐이다. 한번 유혹한 여자와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은 단 두 달. 왕가위는 그의 영화 [중경삼림]에서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 후였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윌에게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백수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도 아주 바쁘기 때문이다. 윌의 세계는 30분 단위로 구성되며, 모든 행동은 30분 혹은 30분 단위로 추가되는 n세트로 계산된다. 한 덩어리의 시간(24시간)은 길 수도 있지만, 조각조각 난 시간은 한없이 짧게만 느껴지는 법이다.

윌은 한없이 가벼운 인간이다. 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윌은 그 가벼운 삶을 더 가볍게 살 수 있는 방편으로 싱글맘을 꼬시기로 결심한다. 아이가 있는 여성과는 헤어지기 더 쉽다는 이유 때문이다. 윌은 이 어처구니없이 가벼운 판단으로 말미암아 너무나도 무거운 삶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조성희 감독은 2010년 영화 [짐승의 끝]에서 싱글맘이 겪는 상황을 비유가 아닌 실제 재난 상황으로 비튼 아포칼립스적 상황으로 그려낸 바 있다. 이 거칠고 무자비한 현대 세계에서 또 다른 한 존재를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무게 따위에 비교할 것이 아니다. 이처럼 철없는 윌이 선택한 한심한 판단 속에 한 소년이 들어온다. 그 소년의 이름은 ‘마커스(니콜라스 홀트)’다.

마커스가 윌을 처음 만나게 된 날 마커스의 어머니는 자살을 시도한다. 어머니의 축 늘어진 몸을 처음 발견한 것이 마커스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세계, 자신을 둘러싸고 돌보던 유일한 세계가 무너진다는 것, 이것은 그야말로 한 세계의 종말과 같다. 영국의 시인이자 성직자인 ‘존 던’은 “인간은 하나의 세계이다”라고 말했다. 마커스는 자신의 세계를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어머니가 꼭 필요하다고 마커스는 생각한다. 그런 다음 마커스는 ‘둘은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울 때 누군가는 서로를 지켜주고 지탱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마커스는 한량에 백수이지만, 사람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는 윌을 떠올린다. 윌이 아버지가 된다면 서로를 지탱해줄 세 명의 사람, 즉 안정적인 삼각형이 되기 때문이다.

[어바웃 어 보이]는 하나의 세계인 인간들 간의 관계를 그리는 영화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나오는 대사는 윌과 마커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둘이 즐겨보게 되는 퀴즈 프로그램의 문제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이 말을 한 인물은 누구일까?” 문제와 함께 수많은 ‘존’ 가운데 네 사람의 ‘존’이 예시로 제시된다. A: 존 던, B: 존 밀턴, C: 존 F. 케네디, D: 존 본 조비. 영화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인물을 선택한다. 바로 존 본 조비. 물론 이는 틀리지는 않았지만, 정답은 아니다. 본 조비는 ‘산타 페’라는 노래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기 때문이다. 존 밀턴은 『실낙원』에서 루시퍼의 인간에 대한 질투와 비애를 그렸으며, 케네디는 그의 대통령 취임 연설문에서 인류의 화합을 말했다.

존 던은 『병의 단계마다 드리는 기도(번역본 제목은 ‘인간은 섬이 아니다’)』 17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떠한 인간도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의 “섬”일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바다에 떠 있는 “대륙”의 일부이다. 하나의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사라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진다. 육지 끄트머리가 사라지고, 당신 친구들의 소유지가 사라지고, 당신 자신의 소유지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한 인간의 죽음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니, 나는 인류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마라. 그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아 스페인 내전을 다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으며, 이 작품은 1943년 샘 우드에 의해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을 그려낸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윌은 종소리를 다루는 노래인 ‘캐롤송’을 만든 아버지의 저작권료로 살아간다. 여기서 ‘종’은 조종(弔鐘)이면서 사람들을 이어주는 끈이기도 하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한다.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을 그렇게 즐거이 쓴다. 물론 2000년도에 만들어진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은 무인도에 표류해 완벽히 혼자가 된다. 그는 삶을 지탱할 모든 것을 혼자서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나 가장 괴로운 것은 결국 혼자라는 것이므로 그는 배구공에 남겨진 핏자국을 사람 얼굴처럼 만들어 ‘윌슨’이라고 부른다. 혼자만의 세계를 유지한다는 건 다른 세계의 지탱 없이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러나 윌이 마커스의 어머니에게 분노하며 내뱉은 말에도 일말의 진실은 담겨 있다. 윌은 말하기를 ‘인간은 섬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섬인 사람들도 있다’고 말한다.

[어바웃 어 보이]의 중심 테마를 이루는 존 던의 『병의 단계마다 드리는 기도』는 시와 산문이 번갈아 가며 나오는 형식이란 측면에서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을 계승한 작품이다. 『철학의 위안』은 보에티우스와 철학의 여신이 주고 받는 대화를 시와 산문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이러한 구성이 존 던에게 와서는 ‘인간 조건에 대한 묵상’과 ‘신과의 논의’ 그리고 ‘신에 대한 기도’로 구성된다. 여기서 묵상과 기도는 시의 언어로 구성되며, 논의는 산문의 언어다. 이러한 구성을 처음으로 시도한 보에티우스는 5세기경 사람이다. 그는 권력 싸움에 휘말려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처형 당하기 전에 『철학의 위안』을 썼다. 보에티우스와 마찬가지로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중요한 문서를 남긴 인물이 또 한 사람 있다. 바로 『요한묵시록』의 요한이다.

요한은 기독교 사도의 한 사람(으로 추정된다)이며, 보에티우스는 초기 기독교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단테의 12신성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중세 유럽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서는 당연히 『요한묵시록』이다. 이 문서는 수많은 이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 반면 중세 동안 가장 많이 필사되고, 가장 훌륭한 책으로 손꼽힌 『철학의 위안』은 공포에 떨며 살던 중세인에게 크나큰 위안을 준 작품이다. 이 두 사람은 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세계와의 대화를 시도했으며 그리하여 공포의 세계와 위안의 세계라는 상이한 두 세계를 후대에 남겼다. “하나의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갔으나 그 흙덩이는 또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대륙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세에 관한 이야기다. 삶은 파편화되고, 흙덩이는 물에 녹아 사라지는 오늘날의 정서적 고립(섬)은 이 두 사람이 그리는 공포 그리고 위안과도 별개의 것이다.

윌은 말한다. ‘그 가운데 섬인 사람들도 있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지만, 마음의 병 때문에 혹은 괴로움 때문에 서서히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윌 또한 병든 자였을지 모른다. 그는 고립을 자처했고, 고립을 최상의 상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을 잘게 쪼갠다는 것은 고립을 견디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한과 보에티우스 다음에 도착하는 서구 기독교의 세계에서 인간의 고립을 돌보는 이들은 사제들이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그의 뛰어난 설교 가운데 이런 말을 했다. “영혼을 다스리는(Regimen) 것이야말로 기술 중의 기술이다.” 이 시대의 사제들은 영혼의 기술자였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지배(Regimen)’란 단어가 보여주듯 이는 사람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사람의 입장이다.

오늘날 우리는 종교의 시대에서 벗어나 살아간다. 우리를 돌볼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바꿀 필요가 있다. ‘영혼을 ‘돌보는(Concuro)’ 것이야말로 기술 중의 기술이다.’ 스스로를 섬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영혼을 돌보기를 포기했던(윌이 ‘난 가벼운 사람이야’라고 말했을 때 그의 말에는 포기의 감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윌이 나라는 섬에 다리를 놓을 결심을 한 것은 아주 순수하지만 자신처럼 고립되어가는 존재인 마커스 때문이다. 상처 입은 ‘소년에 관한’ 관심은 윌로 하여금 마커스와의 사이에 감정의 다리를 놓으면서 점차 마커스를 돌보기로 결심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두고 돌보며 그의 영혼을 끌어안는 것, 그것이야말로 섬으로 떨어져 나갈지 모를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10 댓글

  1. Regimen에 지배, 다스림이란 의미가 있군요 *0*
    그러고 보니 의약학에서 규범으로 정해진 치료법, 처방을 regimen이라 하는데 의미를 보니 care (concuro)와 구분되는 지점이 확 와닿네요. 재미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