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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친구 쇼메이님의 영화관련 애장품 소개

작성자
작성일
2021-05-13 11:37
조회
341
*지난 5/11(화) 유튜브 생방송 시간에 진행된 배테 영화친구들의 영화관련 애장품 소개 시 요약해 읽어드린 쇼메이님의 사연 전문입니다.

영화와 관련된 저의 애장품은 제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인 1999년 봄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책 <봉인된 시간>입니다.

당시 저는 명동의 한 중고 레코드 가게를 아지트 삼아 하루종일 음악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일종의 결사단체의 멤버였는데, 이 멤버들 중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비스콘티 누님"으로 불리던 분이 계셨습니다. 저한테는 어머니뻘 되시는 분이셨죠.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이 분과 음악 얘기, 영화 얘기를 하던 중 당시 제가 경도되어있던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이제 거의 다 봤으니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어봐야겠다라는 얘기를 하자 비스콘티 누님이 "얘, 너 그 책 사지마. 너 이번에 대학도 들어가고 했으니 내가 한 권 사서 선물해줄게." 라고 하시는 겁니다.



예술가들이 직접적으로 예술을 논하는 책을 쓸 경우 대체로 그 수준이 심히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톨스토이의 <예술이란 무엇인가?>나 칸딘스키의 <점, 선, 면> 같은 책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영화 감독은 어떠한 자세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또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자세로 영화를 대해야 하는지를 정말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국내에 나와있던 영화관련 책들을 적지 않게 읽은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봉인된 시간> 이 한 권을 읽고 배운 것이 더 많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하나 소개하고 싶습니다:

"실험과 적절한 예술 양식에 대한 탐색은 보편적으로 무엇보다도 전위 예술과 연관하여 이야기된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서의 실험이란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새로운 것을 실험해 보고 결과가 어떤지 한번 본다는 말인가? 신통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재수없는 예술가의 개인적인 문제로 차치될 뿐이다. 예술작품이란 궁극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미학적 • 세계관적 완성품인 것이며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생동하며,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하나의 유기체인 것이다. 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그냥 하나의 실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비도덕적이고 무의미한 짓일 것이다."

19살 때 읽었던 이 구절이 20년 넘도록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위예술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데, 바로 타르코프스키의 이 구절이 저의 생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굳이 대놓고 전위예술을 하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창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확고한 신념 없이, 본인도 잘 모르겠는 방식으로 대충 작업에 임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됩니다. 대충 영화 만드는 감독, 대충 그림 그리는 화가, 대충 연주하는 음악가, 대충 글쓰는 작가 등등.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충해서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온갖 변명을 해대는데, 그 중 하나가 "나름대로 실험을 해봤는데 잘 안됬다" 라는 말일 겁니다. 타르코프스키가 말한 것처럼 한 예술가에게 있어서 자신이 창작해낸 결과물은 마치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데, 자식을 상대로 이런 불확실한 실험을 하는 부모는 정말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봉인된 시간>은 애초에 당연히 러시아어로 저술됬으나 책의 형태로 출판된 것은 1985년 독일어 번역판이 최초입니다. 워낙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라 독일 유학 중에도 하드커버판, 문고본, 나중에 출판사를 바꿔서 다시 출간된 판본 등 다양한 판본으로 구입했었고 영어 번역본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고 싶으신 영화친구들에게 <봉인된 시간>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봉인된 시간>은 그 어떤 영화 관련 책들보다 영화에 대한 더욱 더 깊은 통찰을 여러분께 선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전체 4

  • 2021-05-13 23:40

    넘 길게 써서 방송에서는 잘린 ㅋㅋㅋ 앞으로는 짧게 쓰겠습니다...^^;


  • 2021-05-15 07:30

    길어도 괜찮아유~
    멋지십니다.
    뭐든 편하게, 뭐든 즐겁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맘 가는대로...


  • 2021-05-16 18:35

    책 구입하려 했더니 절판ㅠ..


  • 2021-05-20 20:06

    타르코프스키가 소비에트 권력자의 눈밖에 난 까닭도 역시 알수 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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