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에 이르는 아일랜드와 영국과의 싸움을 몇 줄로 써내려가거나 IRA(Irish Republican Army)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어쩌면 이 영화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켄 로치’의 이전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서처럼 이 영화 역시 과거의 사건을 기술하기보다는 과거를 통해서 ‘지금’을 말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랜드 앤 프리덤》이 ‘스페인 내전’이라는 상징적인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 1997년의 현재와 2006년의 현재라는 불과 10년의 세월 동안 급박하게 변화해간 세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때문에 이 주제를 말하기 위해 끌어온 배경 역시 단지 ‘영국제국’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랜드 앤 프리덤》이 단순히 프랑코와 파시즘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불러낸 것이 아니듯이 1920년은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함께 18세기와 19세기 초반에 형성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순도식의 계급개념으로 싸움을 이끌어나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화의 후반 데이미안과 테드 진영의 분리는 실재하는 역사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단순도식으로 고형화된 계급 개념이 얼마나 모호하고 허망한가를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켄 로치가 말하는 “계급간의 연대”는 지금 현실의 반영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현실사회주의 (( 이 용어를 실재했던 사회주의 국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 의 붕괴 이후에 가속화된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벌어지는 전 세계적인 빈곤은 영화에 언급되는 “아일랜드 인의 2/3가 실업상태”라는 말과 맞물린다. 명백한 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IRA에 투항해서 싸움을 거듭하던 이들에게 변화된 환경(영-아일랜드 조약)은 급진파와 온건 보수파의 분리를 가져오지만 ‘영국 군대’가 떠난 자리에 ‘아일랜드 공화국 군대’가 들어설 뿐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 군대의 행위를 또 다른 군대가 이어받는 행위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데이미안과 테드는 갈라선다.

세상에 대한 의문이 없는 매우 단순한 이해는 환경을 복제하게 마련이다. 한국에서의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데이미안은 형 테드의 지령을 받아 크리스라는 소년의 심장에 방아쇠를 당긴다. “조국이란 게 이럴 가치가 있는 것이겠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조국’의 의미는 한국에서의 의미와는 다르게 이해돼야 한다. 어쨌건 이로 말미암아 크리스의 어머니는 데이미안에게 등을 돌리고 정확하게 테드 역시 이를 반복한다.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등 돌리게 하는 행위는 결국 분열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켄 로치는 이전의 영화에서 여전히 혁명은 진행 중이라고 말하지만 십 년이 지난 후 계급간의 연대는 더욱 파편화되거나 혹은 자본에 가려져 버렸다. 또는 모두가 ‘테드’의 위치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눈앞의 이익을 좇는 것은 매우 편하기 때문이고, 누군가에게 보이기도 쉽기 때문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어쩌면 모호하고 때로는 매우 힘든 길의 방향을 그려 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켄 로치는 이렇게 하라고 길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우선은 수많은 입장을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혁명-그게 무엇이건 간에-이 끝날 리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