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영화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를 위해 우리는 한국 공포 영화 베스트 10을 꼽아 보기로 했다. 한국 영화사에서 최초의 한국 공포 영화는 보통 1924년에 만든 [장화홍련전]이라고 하지만, 1960년 이전까지 한국에서 장르 영화로 만들어진 공포 영화는 거의 없었고 단 두 편의 영화가 공포 영화로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장르로서 한국 공포 영화의 시작은 1960년이다. 이 해에 [하녀 The housemaid], [백사부인 Madam White Snake] 그리고 [투명인간의 최후]라는 작품이 등장하면서 한국 공포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부분은 1960년이란 해에 등장한 이 세편이 이후 한국 공포 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명인간의 최후]가 SF 호러로 가끔씩 등장하는 특이한 공포 영화의 한 축을 마련한 반면, [하녀]는 1980년대 이후 만들어지는 근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담는 사회파 공포 영화들로 이어졌고, [백사부인]은 1980년대 이전까지 유교/불교적 전통에서 만들어진 고전적 한국 공포 영화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양분하고 있는 건 1980년대를 지배한 한국의 마지막 군사독재 정권이다. 지금 소개할 영화 목록은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여전히 생명력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화들일뿐더러 한국 공포 영화의 힘인 폭발적인 변화의 원동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들이다. 여기서는 공포 영화의 틀만 가져온 박찬욱 감독의 [박쥐 Thirst,2009]나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 Spider Forest,2004], 봉준호 감독의 [괴물 The Host,2006] 그리고 한국 영화 초기 걸작 스릴러인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 The Evil Stairs,1964] 같은 영화는 제외했다(이 목록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

10. 살인마 A Devilish Murder 1965
한 남자가 예전에 죽은 전 아내의 초상화를 발견하고는 이를 집으로 가져온다. 그때부터 집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점차 미치거나 죽어간다. 사건의 원인은 부당한 음모에 빠진 한 여성이 죽기 직전 자신의 몸을 고양이에게 내주며 복수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1965년에 개봉한 [살인마]는 고전기 한국 공포영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영화다. 게다가 한국의 정서를 지배하는 유교/불교적 전통 속에서 ‘한’이라는 요소와 원귀의 복수라는 내용을 다룬 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영화다. 고전기 한국 공포 영화의 표준이 되는 틀을 확인하려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VtAPh2M9Q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9. 알포인트 R-POINT 2014
베트남 전쟁 시기 한 부대는 실종된 부대의 구조신호를 듣고는 구조 지점인 알-포인트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구조 부대가 알-포인트에서 발견한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군사독재 시절 한국에서는 수많은 전쟁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 대부분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집중한 영화였고, 몇몇은 전쟁의 비극을 그리려는 영화였다. [알포인트]는 군을 배경으로 한국에서는 최초로 만들어진 공포 영화다. 게다가 영화의 배경인 베트남전은 한국사에서도 비극적인 파병이었던 전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분위기는 전쟁 그 자체와 그곳에서 사라진 이름 모를 사람들 모두가 공포를 이끌어내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진정한 장점은 정말 무섭다는 것이다.

8.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 Memento Mori 1999
한국 현대 공포 영화의 시작을 열었던 [여고괴담 Whispering Corridors 1998]의 두 번째 이야기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여학교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다룬 영화들이다. 이 가운데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는 억울하게 죽은 뒤 망령이 되어 학교를 떠돈다는 [여고괴담] 첫 번째 이야기와는 그 결이 다른 영화이다. [여고괴담]은 비록 여학교라는 특정 공간과 당시로써는 참신한 영화적 효과를 보여주긴 했지만, 한과 원귀라는 고전기 한국 공포 영화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는 한국의 극단적인 입시환경과 사회로부터 폐쇄된 여학교에 놓인 인물의 불안과 두려움을 공포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낸다. 공포 영화를 넘어 90년대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7.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Bedevilled 2010
고향인 섬을 떠나 살던 해원은 오랜만에 친구인 복남을 찾아 섬으로 향한다. 작은 섬에는 십여 명의 사람이 살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는 이상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복수극들 대부분은 끔찍한 고통을 당한 특별한 사건과 이 고통을 가해자에게 되돌려 주려는 내용이 다수다. 하지만,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처럼 삶의 대부분이 고통의 연속이었던 과정을 폭발적으로 해체하는 영화는 드물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한국 공포 영화 가운데 가장 끔찍한 상황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게다가 한국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을 떠올린다면 이 이야기를 단순히 허구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게 더 무섭다. 영화 후반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려는 김복남의 이미지는 한국 공포 영화사에서 가장 잊히기 어려운 장면 가운데 하나다.

6. 곡성 THE WAILING 2016
작은 마을에 낯선 외지인이 등장하고, 의문의 사건이 펼쳐지며 한 아이는 귀신에 들리고 죽은 시체는 되살아난다. 한국에서 나홍진보다 기괴한 에너지를 풍기는 감독을 만나기는 어렵다. [곡성]은 마치 그의 장편 데뷔작인 [추격자]와 다음 작품인 [황해]를 마음대로 휘저어 섞은 다음 제멋대로 펼쳐낸 영화처럼 보인다. 그래서 [곡성]은 마치 [추격자]처럼 광기 어린 일직선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황해]처럼 등장인물 모두가 영화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 영화의 인물만이 아니라 관객마저도 미로에 갇혔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이 뒤틀리듯 꼬인 영화 속에 관객을 몰아넣는 건 다름 아닌 영화가 지닌 미친듯한 에너지다.

5. 사바하 Svaha: The Sixth Finger 2019
사슴동산과 존재가 규정되지 않은 한 아이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한국식 오컬트로 담아낸 수작. 장재현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2015]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서구식 오컬트 영화의 전형을 이식하려고 시도한다. 그런 다음 그는 [사바하]를 통해 한국식 오컬트 영화가 어떤 형태로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한 지점을 보여준다. [사바하]는 동양의 불교적 전통 속에 가톨릭의 세계뿐만 아니라 구세주 전설에 스스로를 파멸로 내던진 유대교 고대 랍비까지 포함한 풍사 김제석이란 인물을 창조해낸다. 김제석이란 이 모순적이고 불가해한 인물은 단순히 분열적 종교의 상징이 아닌 한국 사회에 내재한 기괴하게 뒤틀린 욕망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한국형 오컬트 영화의 정점이다.

4. 깊은 밤 갑자기 Suddenly at midnight 1981
나비를 연구하는 학자가 어느 날 한 여자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런데 이 여자는 백치 같은 태도에 기괴하게 생긴 목각인형을 애지중지한다. 그리고 학자의 아내는 어느 날부터 학자와 여자의 관계를 의심하며 점차 미쳐가기 시작한다. 고전기 한국 공포 영화가 거의 사라졌던 80년대에 느닷없이 등장한 [깊은 밤 갑자기]는 이전의 한국 공포 영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한도 원귀도 없으며, 유교/불교적 세계관도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뒤틀린 토착 신앙과 이를 미칠 때까지 거부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다. 한국 공포 영화의 암흑기에 등장한 최고의 공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3. 불신지옥 Possessed 2009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희진은 어느 날 동생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 집으로 간다. 그런데 소진의 실종 주변으로 이상한 죽음들이 발생하고 실종된 소진은 신들린 아이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불신지옥]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오컬트 영화다. 고전기 한국 공포 영화의 기본 구조는 귀신 들린 인물을 다루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한국 전통의 토착 신앙에 기반해 죄와 악에 관한 문화적 처벌론을 말하는 것이었다. [불신지옥]은 이러한 문화적 처벌론을 넘어 한국 전통의 토착 신앙과 기독교 광신자가 소진이라는 인물을 두고 충돌하는 이야기를 서로 다른 욕망의 충돌로 다루면서 그 결과가 얼마나 기괴하고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2. 소름 Sorum 2001
한 남자가 낡은 아파트로 이사 온다. 그는 여기서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여자는 자신을 폭행하던 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만다. 그 시체를 처리하면서 둘은 가까워지게 된다. [소름]은 한국사회의 바닥에 깔린 절망과 공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한국사 전체를 지배하는 폭력이 만연한 사회와 아파트로 상징되는 성장에 대한 욕망 그리고 탈출구 없는 세계에 대한 절망은 [소름]의 장면 장면에 녹아 있고 그것들이 순간순간 섬뜩한 공포로 솟아오른다. [소름]이야말로 단 하나의 점프 스케어도 없이 공포가 피부 아래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순위에 포함하지 않은 작품들이지만, 결코 떨어지지 않는 작품들
기담 Epitaph 2007
부산행 Train To Busan 2016
악마를 보았다 I Saw the Devil 2010
장화, 홍련 A Tale of Two Sisters 2003
여곡성 Woman’s Wail 1986

1. 하녀 The housemaid 1960
방직공장의 여성 노동자에게 음악을 가르치던 주인공은 여성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을 하녀로 고용한다. 어느 날 하녀는 주인공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이때부터 하녀는 점차 주인공의 아내 자리를 흉내 내기 시작한다. [하녀]는 중산층 남성의 불안과 하녀의 욕망이 충돌하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로 진행되지만, 이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상은 미친듯한 불안감을 영화 끝까지 담아낸다. 한국 영화 사상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욕망을 이 정도로 잘 그려낸 영화는 없다. 정말 미친듯한 장면의 연속을 목격할 수 있다.

한국 공포 영화 사상 최고의 작품이 본격적인 한국 공포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 작품이란 건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1960년은 권위주의 정권과 군사독재 정권이 바뀌기 직전 아주 짧은 자유를 누리던 시기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한국 영화야말로 자유롭지만 긴장된 시기에 가장 폭발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방증할만한 영화가 바로 1998년에 만들어진 [여고괴담]이다. 한국 공포 영화의 암흑기이자 군사독재 시기인 1979년에서 최초의 민주 정부인 1998년(김영삼 정권은 일종의 과도기다)까지는 몇몇 특별한 작품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공포 영화는 불모지에 다름없었다. 그런데 1997년 한국 경제의 붕괴 이후 등장한 이들 공포 영화들은 그 이전에 등장한 영화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고,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듯이 한국 공포 영화의 힘은 결국 사회의 안정과 불안정 그사이의 충돌에 있을 것이다.

55 댓글

  1. 선정하신 10편 중 저는 딱 5편만 봤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도 감상해야할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 선정해 주신 닥두님께 감사드립니다. 여고괴담 2편은 영화 자체 뿐만 아니라 OST 역시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메인테마와 17세의 비망록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복잡미묘한 분위기를 잘 살려낸 걸작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여주인공이 해질녘 학교 옥상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노는 장면에 흐르는 메인 테마가 인상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 알포인트와 박쥐를 재밌게 봤는데요. 박쥐를 보고 송강호라는 배우에게서 섹시함을 느끼게 될줄은 몰랐네요..성기노출장면은 송강호의 그것을 봤다는 이슈적 요소보다 그렇게밖에 자신을 추앙하는 사람들에게 연기 할수 없었던 주인공의 착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라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고전 공포영화로는 “넋,1973” 이 있네요. 가장 한국적인 정서의 공포 요소인 여인의 한을 잘 나타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적 다 쓰러져가는 친할머니댁의 어두침침한 집을 들어서면서마자 TV속에 상영되고 있었던 그 넋의 귀신울음소리나 음산한 기운과 맞물려진 마치 가세가 기울듯이 한쪽으로 기울여진 벽과 칙칙한 공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유년의 시절에 느꼈던 공포영화속에 나타난 귀신들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헤어나기 어렵고, 또 무섭습니다.
      정치의 ㅈ 자도 모르는 노동자로 살아온 무관심자로서 이 영화가 나온 시점이 박정희 정권시절이었는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절이었는지조차 모르지만 어릴때는 빨간 날 많아서 그저 좋아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노동자인 아버지는 정치에 많은 관심이 있으셨지만 어느날 여당, 야당 싸우는 꼴 보기싫다며 그동안 믿고 지지해왔던 당을 버리고 엄한 제 3당을 찍고 오신 뒤로는 뉴스, 바둑보다 가벼운 예능프로로 채널을 전환하셨습니다.
      옛날 사람이신 아버지께서 그동안 꿈꿔왔던 진보를 버리고 안철수를 찍은 웃픈 이야기였습니다.

        •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면서 무서웠던 작품은 극장용 영화 보다는 TV에서 방영한 단편들이었네요. 1980년 TBC에서 방영했던 [형사] 중 한 편이었던 [얼굴 없는 미녀]는 꿈에 몇 번이나 나올 정도로 무서웠고, [쿠조]와 [죠스]를 섞어 놓은 듯한 1984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의 [개]는 한동안 개 공포증에 시달리게 한 작품이네요. 이 당시에 만든 서늘한 TV용 단편들을 이불 뒤집어 쓰고 보던 기억들이 다시 생각 나네요.

        • 피해자에게 가장 큰 공포는 트라우마로 남을수 밖에 없는 “기억”인것 같습니다.
          7번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이유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겨울의 끝, 화장실도 없는 2층 창고방에서 생생하게 들리는 빗소리가 처량하게 느껴지는 새벽입니다.

          눈이 아파 이만 자야겠네요.

          • 불신지옥에 대한 배드테이스트 멤버분들 의견은 (호러 못 보시는 우디님 말고) 평이 대부분 좋은 것 같은데.. 선뜻 손이 안가는 영화였지만 닥두님 글 읽고 봐야겠단 생각 굳게 들었어요!!

            • 추천해주신 불신지옥 재밌게 봤어요.
              감독이 너무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건축학개론의..이용주^^
              오랜만에 공유주연의 차기작 준비중이시던데 무척 기대가 되네요.
              매 작품 장르를 탈바꿈하니 더요.